[알파세대의 첫 소비] AI 네이티브가 만든 새로운 시장의 문법

by 이수진

밈을 보면 산업의 변화가 보인다

퉁퉁퉁퉁퉁퉁 사후르. 지나가던 초등학생의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낯선 음성. 화면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미지들이 빠르게 깜박인다. ‘이탈리안 브레인롯(Italian Brainrot)’이라 불리는 밈이다. AI가 합성한 영상, 말도 안 되는 이탈리아어, 반복되는 중독적 사운드. 낯설지만 묘하게 끌린다.

이탈리안 브레인롯의 대표 캐릭터

알파세대는 2010년 이후 출생한 만 13세 이하의 세대로, X–Y–Z 이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알파’라 불린다. 단순히 다음 세대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시작이라는 은유다. 이들은 한국 인구의 약 25%, 전 세계 인구의 24.4%를 차지한다. 전세계를 기준으로 이제 모든 세대를 제치고 가장 큰 세대로 자리하고 있다. 더 이상 ‘미래 세대’가 아니라, 현재의 소비 주체로 읽어야 할 이유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를 손에 쥔 이들은 언어보다 이미지, 텍스트보다 밈, 검색보다 AI 대화로 세상을 탐색한다. 그들의 세계는 속도와 감각, 그리고 실시간 반응으로 구성된다. 교실보다 유튜브에서 배우고, 브랜드보다 캐릭터를 기억하며,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한다. 우리는 그동안 이 세대를 ‘7세 고시’, ‘스마트폰 중독’ 같은 단편적 사회 현상으로만 읽어왔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그들의 맥락 안에서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일이다.

전 세계 인구의 약 24%를 차지하는 알파세대

알파세대의 기본 성향

세대의 특징은 나이가 아니라 시대의 경험이 만든다. 이들의 생애경험을 추적해보자. 우선 알파세대는 2010년 이후 태어나,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존하기 시작한 첫 세대다. 2016년 ‘알파고 vs 이세돌’ 대국은 그들의 상징적 출발점이었다. AI와 경쟁하지 않고, 함께 자라난 ‘AI 네이티브’의 등장이다. 이들은 전 세계적으로 저출산이 뚜렷해지는 시기에 성장했다. 형제가 드문 환경 속에서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배우며, 자연스럽게 개성과 자기표현을 중시한다.

동시에 K-콘텐츠가 세계를 이끌던 시기에 자라며 “한국이 앞서 있다”는 문화적 자긍심을 내면화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사건—코로나 팬데믹. 입학 첫날부터 마스크를 쓰고, 친구의 얼굴을 화면으로만 봤던 세대. 놀이터보다 유튜브에서 놀고, 교실보다 줌(Zoom)에서 배웠다. 현실보다 디지털 세계가 먼저였던 세대, 이제 그들이 새로운 소비의 문법을 만들어가고 있다.

기본적으로 여타 세대와 달리, 알파세대는 타인과의 비교보다 자신만의 표현을 중시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드러내는 게 핵심이다. 세상은 무대이고, 자신은 그 무대의 주인공이라는 확신이 이 세대를 움직인다. 이들의 무대는 SNS다. 2024년 기준, 10대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은 인스타그램(933만 명)이다. 하지만 사용 시간으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와이즈앱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 10대의 틱톡 사용 시간은 19.4억 분, 인스타그램은 14.1억 분이었다. 그 이유는 틱톡의 구조에 있다. 유튜브처럼 구독자가 필요하지 않고, 인스타그램처럼 완벽하게 꾸밀 필요도 없다. 추천 알고리즘 ‘For You’ 피드에 한 번 노출되면, 누구나 단 하루 만에 주목받을 수 있다. 팔로워 대신 알고리즘이 기회를 나누고, 잘 만든 영상보다 자연스러운 표정과 일상의 리듬이 더 큰 공감을 얻는다.

1️⃣피지털(Physital) 공간에서 놀이하는 세대

알파세대는 24시간 연결된 사회에 존재하지만, ‘가상공간에만 사는 아이들’은 아니다. 그들에게 세상은 현실과 디지털이 끊김 없이 이어진 피지털(Physital) 공간이다. 피지털은 물리적(Physical)과 디지털(Digital)의 합성어로, 디지털 기술을 통해 오프라인 경험을 확장하는 개념이다. 알파세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구분하지 않는다. 이전 세대가 ‘가상’과 ‘현실’을 구분했다면, 알파세대에게 두 세계는 하나의 연속된 장(field)이다. 교실과 서버, 놀이터와 플랫폼의 경계가 흐릿하다.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의 사회성으로 놀 줄 아는 세대

알파세대는 혼자 화면을 보는 세대가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의 사회성으로 놀 줄 아는 세대다. 대표적인 예가 마인크래프트(Minecraft)다. 출시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월간 이용자 수(MAU) 2억 명 이상,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게임 커뮤니티 중 하나다. 특히 알파세대가 주로 사용한다. 15세 미만이 20.6%, 15~21세가 43%, 22~30세가 21%로 10대와 20대 초반이 절반을 넘는다. 흥미로운 점은, 성인은 주로 혼자 즐기지만 어린 이용자의 80% 이상은 친구나 가족, 혹은 다른 유저와 함께 플레이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디지털 속에서도 ‘함께 논다’는 감각을 즐긴다.

마인크래프트 성장의 중심에는 알파세대가 있다

동시에 오프라인의 즐거움도 되찾고 있다. 현실 놀이의 가치가 다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8~15세를 중심으로 실생활 활동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걷기 여행과 친구들과의 주말 만남이 증가하고, 실물 장난감을 원하는 아이들이 전년 대비 16% 증가, 보드게임 인기도 8% 상승하며 오프라인 놀이의 가치가 다시 부상했다. 실제로 보드게임을 주력 상품으로 판매하는 코리아보드게임즈의 매출은 2020년 490억 원에서 2024년 624억 원으로 약 27% 성장했다. 팬데믹 이후에도 성장세를 이어가며, 젬블로·행복한바오밥·조엔컴퍼니 등 주요 보드게임사들도 완만한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모두 알파세대가 화면과 현실을 넘나들며, 세상을 피지털하게 체험한다는 것을 방증한다.

2️⃣소비는 놀이, 투자는 학습 “키드프레너(Kidpreneurs)”

알파세대에게 소비는 놀이이고, 투자는 학습이다. 물건을 사는 일은 단순한 구매가 아니라 ‘자기표현의 과정’이다. 돈의 흐름을 이해하는 일도 더 이상 어른의 전유물이 아니다. 틱톡에서 알파세대가 올린 영상들은 이런 세대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테무깡’, ‘다이소템’, ‘올리브영 하울’ 같은 콘텐츠는 비싼 제품을 자랑하기보다, 자신이 직접 구매한 물건을 보여주고, 꾸미고, 리뷰하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 예전 세대가 고무줄 놀이를 했다면, 지금의 아이들은 제품을 분석하고 나만의 감성을 담아 리뷰하는 놀이를 한다.

이런 감각은 소비의 주도권으로 이어진다. 성신여대 백지연(2023)에 따르면 10대의 월평균 화장품 지출은 1만~2만 원 미만이지만, 직접 구매하는 비율이 61.6%에 달한다. 다이소·올리브영 같은 가성비 매장은 그들에게 실험실이자 놀이터다. 온라인에서도 주도권은 뚜렷하다. 카카오스타일이 운영하는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에서는 2023년 7~9월 기준 10대 고객의 화장품 구매액이 전년 대비 383% 증가했다.

이미지 출처 : 토스 틴즈(Toss Teens)

금융도 예외가 아니다. 청소년의 91.9%가 전용 체크카드를 쓰고, 삼성페이 사용률은 94%에 달한다. 대표 사례는 토스 틴즈(Toss Teens)다. 7~18세가 스스로 금융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든 서비스로, 청소년 전용 유스카드(USS Card)는 ‘엄카’ 대신 자신의 이름으로 쓰는 첫 카드다. 2021년 출시 이후 누적 320만 장이 발급되며, 알파세대가 돈의 개념을 놀이처럼 배우는 상징이 되었다.

이 흐름은 자연스럽게 투자와 금융 학습으로 이어진다. 이제 용돈 대신 주식을 선물받는 아이가 낯설지 않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2021년 미성년자 명의 주식계좌는 9만 1,000개, 2022년 1분기에는 1만 7,000개가 새로 개설됐다. 결국 알파세대는 돈을 벌기 위해 배우는 세대가 아니라, 돈으로 배우는 세대다. 소비로 자신을 표현하고, 투자로 세상을 이해한다.

3️⃣‘원영이즘’이 시사하는 것들

요즘 초등학생에게 가장 인기 있는 아이돌은 아이브의 장원영이다. 다른 세대에서도 인기가 높지만, 유독 어린 세대에서의 열광은 특별하다. ‘원영이즘(Wonyoungism)’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단순한 팬심을 넘어, 스타와 팬이 맺는 ‘파라소셜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의 확장판이다. 아이돌에게 이상적 자아를 투사하고, 모방을 통해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려는 욕망이 작동한다.

하나의 생활루틴이 된 ‘원영이즘’

이 구조는 알파세대가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이들은 점점 더 SNS를 관찰과 학습의 창으로 사용한다.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해석하며 시간을 보내는 경향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2021~2025년 사이, 스포츠 시청(+16%)·상품 탐색(+14%) 등 콘텐츠 소비 활동은 늘었지만, 의견 게시(–10%)·사회적 이슈 공유(–14%) 등 표현 활동은 줄었다. 즉, SNS는 ‘친구와 소통하는 공간’이 아니라 ‘신문물을 관찰하는 장’으로 바뀌고 있다.

중요한 건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렸다

알파세대는 이미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소비 주체다. 그렇기에 이들의 소비를 단순히 제한하거나 통제하기보다, 자율성을 인정하고 방향을 함께 설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들은 ‘하지 말라’는 경고보다 ‘이렇게 해보자’는 제안에 더 크게 반응한다. 이렇게 ‘보는 데 머무는 세대’일수록 무엇을 보며 자라는가 가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결국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그들의 내일을 만든다.

이수진 기획 이상은 그래픽 김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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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10년간 『트렌드코리아』시리즈 공저자로 활동했으며, 동아대학교 국제무역학과 강사이자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업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방송과 강연을 통해 최신 소비 변화를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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